Search

'가야금 명인'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7.19 [리뷰] 2011 황병기 라이브, 가야금 콘서트 '달 항아리'를 듣고

Array

                                                                                                                            [출처 : bkhwang.com]

 

[아이스뉴스(ICENEWS)=최진목 기자] 막스 부르흐를 들어봤는가. 그의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을

듣다보면 마치 현실에서 유리되어 이상향의 세계, 아득한 선계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와 흡사하게, 투명한 이미지의 황병기 가야금을 듣다보면 어느 순간 오대산의 어느 산방에 들어와 있는

착각이...    깊은 밤, 나뭇잎이 바람에 쓸리는 소리가 창밖에서 넘어오니 가야금 소리가 맛을 더한다.
   

리듬악기인 장구와 호흡을 맞추며 무수한 여백, 여음을 발행하는 그의 가야금 연주는 서양 악기와

비교할 때 첼로 소나타와 흡사한 정감을 자아낸다. 서로 다른 두 악기 소리가 주는 감성 영역이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균형값을 갖기 때문일까. 그리고 음악가 풍으로는 멜로디컬한 모짜르트 보단

사색적인 브라암스에 가깝다.

   

황병기는 스트라빈스키같은 전위적 음악가, 존 콜트레인같은 재즈 대가로 부터 새로운 음악에 대한 충격을

받고 작곡을 시작했다. 그가 콜트레인을 좋아하는데는 그의 음악에서 동양적 정서가 묻어나기 때문이라

한다. 꼭 국악을 해서가 아니라 황병기의 음악은 지극히 한국적이다. 평상시 표정처럼 음악적 장식이 별로

없고 담백하게 표현할 것만 표현하고 들려줄 것만 들려준다. 과장과 장식이 많은 중국, 일본과는 차별된다.

 
역설적으로 곡의 형상을 만드는 여백과 여음은, 가야금줄의 떨림사이에 무한한 입체감으로 덧입혀지면서

정서적 안정을 유도한다.  숲에서 표현된 나뭇잎, 열매가 떨어지는 묘사처럼 그의 작품은 주변에서 받은

인상을 옮긴 표제음악이 많은데 이런 경향은 최근의 '시계탑'까지 이어진다.

  
그의 작품은 장 구성이 1장에서 5장까지 다양하며 소나타곡처럼 악기의 능력과 질감이 분명하고 가야금의

여운을 잘 살리고 있다. 얼핏 들으면 전통곡처럼 들리는, 74년에 발표된 획기적인 곡 '침향무'에는 12줄을

한꺼번에 훑듯이 튕기는 연주가 몇차례 있다. 개인취향이지만 이 소리가 참으로 청량감을 준다. 하프나

기타와는 또 다른, 나무의 질감을 머금은 채 짧은 여음과 고유의 톤으로 정신을 리프레쉬 시켜주는 듯하다.    
   
'미궁'은 지금 들어도 파격적인 음악이다. 소리의 일반적 생산방식을 완전히 벗어난 연주법에, 여성보컬의

음울한 신음소리와 뜬금없는 대사, 웃음인지 울음인지 뒤섞인 감정...   이를 처음 공연한 75년은 마침

미국의 그룹 '키스'가 요란한 분장과 퍼포먼스를 동반한 하드록을 들고 나와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해이다.

 

트로트와 포크송이 주를 이루던 시대에 이처럼 '확 깨는' 경우가 아닐런지. 더구나 대중음악도 아닌 국악

분야에서 일어난 '사건'이므로 꽤 큰 파장을 일으켰을 법하다. 더구나 보이스에는 당시로써는 낯설기만한

현대무용의 전도사 홍신자가 나섰으니 말이다. 당시 똑같은 공연을 황병기가 아닌 사람이 했을 경우

온전하게 이후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그는 1962부터 작곡을 시작, 창작생활이 근 50년에 접어든다. 앨범으로는 '침향무'를 비롯하여 2007년에

나온 '달하노피곰'과 미국 순회연주 당시 녹음한 것을 리마스터링한 앨범을 포함, 총 6장이 나와 있다.

작품 발표 앨범은 5장이므로 10년에 한장 꼴로 나온 셈이라 생각보단 적은 편이다.

 

음악을 그저 좋아서 할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하는 그에게 창작활동을 위해서는 홀로 있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주변에서는 그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여러 직책을 맡아 여전히 바쁘게 생활하는 그이니

창작의 틈이 많지 않아 보인다. 후학을 가르치거나 어떤 직책의 부담을 다 접어놓고 음악인으로만

달려왔다면 2~3배의 다양한 작품을 남기지 않았을까. 그는 문화계 행정인으로 기억될 수 없다.

베토벤이 인생 끝자락에 대작 '합창'을 남겼듯이 황병기의 방점을 확실하게 찍어 줄 그 무엇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하다. 

 
연주시간이 가장 긴 작품은 '미궁'이지만(약 18분) 실험적인 작품이라 대중이 즐겨듣기 어렵고 악보도

없어 황병기 본인외엔 연주가 곤란하다. 그 다음으로 긴 작품은 16분가량의 '비단길'이고 그 외에는 10분

내외의 소품이 대부분이다.

 

그의 창작인생이 50년에 이름에도 불구하고 (소설로 치자면) 그에게 장편이 없는 이유는 시간 소모적인

행정직 또는 교수직을 맡겨온 주변의 탓(?)이 크다. 가야금 연주자로써 그는 할 일을 다했고 세계적으로

한국을 대표한다. 하지만 창작자로써 그에겐 아직 '불후의 대표작'에 관한 미래의 여지가 있다.

 

 
2011년 7월, 서울 강남의 LG아트센터에서 황병기의 '달항아리' 콘서트가 열렸다.

'밤의 소리-소엽산방-하마단-추천사-미궁-침향무'의 순으로, 기 발표된 6곡이 연주됐고 4곡은 황병기의

후학들이, 마지막 2곡은 직접 연주했으며 사이사이 그의 해설이 들어가 총 100분간 진행됐다.

 
오랜만에 접하는 가야금 명인의 공연이라 소리만으로도 감사할 뿐이지만 공연의 프레임을 놓고 보면 좋은

평을 하기 힘들다. 연결성없는 각각의 단품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일관해 공연 효율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무리 국악이라는 '보수성'을 감안한다해도 명인의 위상에만 기대는 밋밋한 기획으로는 지속적인 관심을

모으기 어렵다. 

 

한편, 프로그램 북은 없고 자막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외국인도 꽤 왔고 일종의 '국가브랜드 공연'인데

이런 부분에 대한 배려가 없다. 연주곡에 대해 익히 알려진 내용은 그의 앨범 책자처럼 한글과 영문으로

수록해 배포하고, '즐거운 국악'을 위한 엔터테이너로써의 황병기의 역할을 위해 입체적인 연출이 필요했다.  

국악도 재미있어야 한다. 가야금처럼 음량이 크지 않은 악기에 그렇게 큰 공연장이 음질에 유리했겠는가도
생각해봐야 한다.

  

의무감에서 내보내는 듯한 방송사의 국악프로그램처럼 만들면  곤란하다. 종합예술인 공연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기도 하므로 드라마성과 디테일을 갖춰야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명상적인 분위기로

정신적인 위안을 주는 공연을 이끄는 것도 가치가 있겠지만, 관객의 집중을 모으고 지속가능하기 위해선

그 자체로 완결구조를 갖는 공연구성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어쨌든, 타악기인 장구와 호흡을 맞추며 완급이 수시로 교차하는 가운데 수묵화처럼 여백,여음이 많은

가야금곡은 명상곡에 다름아니다. 외국의 음반전문잡지가 묘사한 '현대인의 정신적인 해독제'란 표현이

적절한 듯하다.

  

결코 오버하지 않는 가야금 명인 황병기. 가진 재능이 하나에 집중된다면 보다 큰 업적을 이룰 수도

있으련만 그는 여전히 그를 부르는 여러 곳에 남은 에너지를 고루 쓰고 있다. 비젼이 없어보였던 국악을

60년대에 자신의 길로 정해 지금까지 이끌어 오면서 후학을 위한 블루오션으로 만들어놨다. 

 

생일같이 자기가 태어난 날이니 무슨 날이니 하는게 뭐 그리 중요한지 모르겠다고 할 일에만 몰두하는

성향이지만, 그에겐 40여년 차이가 나는 첼리스트 장한나와 친분을 유지하는 격의없는 친화력도 있다.

젊은 어머니들은 자식의 EQ계발을 위해 모짜르트같은 서양음악만 찾지 말고, 공감하기 훨씬 용이한

황병기의 가야금을 자주 들려주기 바란다.

 

올초, 국립극장의 산아래 다목적홀에서 사업계획 발표가 있던 날, 모임이 끝난 후 주차장께에서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던 그가 생각난다.

 

창작 인생 후기의 그에게 이즈음은 '비단길'일까 '미궁'일까.

 

 

아이스뉴스=최진목 기자(realtree99@hanmail.net)  [Copyright ICE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