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에게 짜릿한 감동을 선사했던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경기. 이 경기에서 한국 쇼트트랙에 또 하나의 기록이 탄생했다. 바로 한국 트트랙 사상 최고령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의 이름이 바뀐 것이다. 그 주인공은 여자 쇼트트랙 팀의 맏언니 조해리 선수.

 

한국 쇼트트랙 역사상 최고령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최고령 세계선수권 우승자.

 - 조해리 선수를 대변하는 타이틀이다.

 

한국 쇼트트랙에는 많은 영웅들이 있었다. 특히 꾸준히 세대교체에 성공하며 세계를 호령해온 여자 쇼트트랙에서는 올림픽 다관왕과 세계선수권 연속우승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스타 선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우수한 선수들이 선수생활을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는 점은 한국 쇼트트랙의 오랜 그늘이자 풀어야 할 숙제였다.

 

그런 한국 쇼트트랙의 그늘이 사라졌다. 조해리 선수가 역사를 다시 쓴 것이다후배들은 이제 그녀가 세운 이정표를 보며 선수로서의 계획과 목표를 다시 설계하기 시작했다.

 

화려함보다는 한결같은 실력과 꾸준함으로 마침내 쇼트트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조해리 선수. 모든 역경을 넘어 이제는 선수생활의 즐거운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는 조해리 선수를 만나 지난 선수생활에 대한 이야기와 국가대표생활을 마감하는

소회를 들어보았다.

 

 

 

 

올림픽이 끝난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는데, 최근에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5월부터 운동을 다시 시작했어요. 소속팀(고양시청) 계약기간이 아직 남아 있어서

팀의 여자 후배들을 도와주면서 운동을 하고 있어요. 이제 시즌이 막 시작됐기 때문에 몸 푸는 식으로 운동하고 있어요.

 

국가대표 은퇴 선언을 했는데, 은퇴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는지?

 잘 모르겠어요. 지금 대표팀을 제3자 입장에서 보게 되니까 어색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아쉬운 느낌이 들지는 않고 홀가분해요. 마무리가 좋아서 그런 것 같아요.

어떤 미련이 남는다거나 아쉬운 느낌 없이 홀가분해요..

 

얼마 전 고려대학교에서 강연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주제로 이야기했는지

궁금하다.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어땠는지? 

 선수 생활 동안 있었던 이야기들, 힘들었을 때나 잘됐을 때 이야기를 하고 질문 

받고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된 대담이었는데요, 재미있는 질문들이 많이 나와서 

재미있었고 또 뿌듯하기도 했어요.

 

 

시니어 데뷔 이후 국가대표만 8, 국가대표 막내시절부터 맏언니로 올림픽에 참가하여 금메달로 선수생활의 대미를 장식하기까지. 수많은 경기에 참가했고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훈련으로 땀 흘리며 보내며 많은 추억이 남았을 것이다조해리 선수 스스로 돌아본 선수 생활은 어떤 기억일까.

 

 

지금까지 출전한 경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와 가장 기억에 남는 시즌 꼽는다면?

 당연히 올림픽이 제일 기억에 남을 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물론 올림픽 금메달도 굉장히 좋았지만 2011년 세계선수권 종합우승이 정말 굉장히 기억에 남아요.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 기분과 세계선수권 종합우승 했을 때의 기분을 비교하면

세계선수권을 우승했을 때가 더 좋았어요.

 

 

2012년 세계선수권 1000m 우승 후 눈물을 흘렸었다. 어떤 마음이었는지?

 2011/12 시즌이 굉장히 어려움이 많은 시즌이었어요. 세계선수권이 시즌 마지막

국제 시합이었고 시즌이 마무리가 되는 경기니까. , 이제 끝났다라는 생각도 들었고시상대에 올라서 태극기가 내려오는걸 보는데 왠지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순간이 또 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그때는 많이 지쳐 있었기 때문에 많이 작아졌던 것 같아요. 그때 캐나다의 발레리 말테 선수가 왜 우냐고 울지 말라고 했었죠.(웃음)

 

2008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의 시니어 부문에 출전한 적이 있다. 그 대회의 노비스 부문에 초등학생이던 심석희 선수가 나왔었는데 기억하는지? 국가대표로 만났을 때 느낌이 특별했을 것 같은데?

 대표팀에서 만났을 때 석희에게 물어봤었어요. 그때 그 꼬마가 너 맞냐고(웃음). 지금도 그렇지만  초등학생 때도 키가 컸고 스케이트도 그때부터 초록색이어서 독특해서 기억해요. 그때는 당연히 대표팀에서 만날 줄은 몰랐죠.

 

오래 선수 생활을 하며 여러 선수들과 경쟁했는데 기억에 남는 라이벌은?

캐서린 로이터 선수요. 제가 한번 이기면 그 다음엔 캐서린이 이기고 다음에는 또 제가 이기고 번갈아 가면서 우승경쟁을 했던 선수라 기억에 남아요. 지금 미국 주니어팀 코치로 있다고 하는데 보고 싶네요.

 

 

모든 선수들의 최종 목표이자 꿈의 무대인 올림픽. 조해리 선수는 그 무대로 향하는 길에서 좌절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아픔을 겪었기에 이번 올림픽의 금메달이 더욱 드라마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참가했을 마지막 올림픽에 대해 물었다.

 

지난 올림픽과 이번 올림픽에서 팀 내 역할도, 출전하는 경기도 달랐기 때문에

준비 과정이나 느낌이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 어땠는지?

 벤쿠버 올림픽 때는 그 어마어마한 함성소리가 하나도 안 들릴 정도로 긴장을 많이 했어요

특히 계주 경기에선 더 긴장을 많이 했었어요. 개인적으로도 벤쿠버 대회는 처음 나간 올림픽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나간 올림픽이었기 때문에 더 간절했고 그래서 더욱 긴장했던 것 같아요. 이번 소치 올림픽 때는 벤쿠버 대회 때보다는 편안했어요

물론 준비과정은 똑같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준비가 잘되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연습 때마다 신기록을 경신할 정도로 준비과정이 좋았고 모두가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잘 탔기 때문에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던 것 같아요.

 

◆ 올림픽 계주 경기 전 손을 모으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이번 시즌부터 계주 경기 전에 손을 모으고 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시작했어요.

화이팅 하기 전에 제가 한마디를 하는데 시합 때마다 상황에 맞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했어요. 그 한마디가 간단한 것 같지만 올림픽 때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어떤 이야기를 해야 긴장이 덜 될까를 생각하느라 며칠 동안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올림픽 때는 더 잘하려 하지도 말고 연습 때 하던 대로만 하자고 했어요그때는

그냥 편했어요. 다 같이 화이팅하고 웃었던 기억이 나요. 마지막 두 바퀴 때는 

', 치고 나오겠구나' 생각했어요. 경기가 끝나고 이야기해보니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대요.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정말 금메달을 딸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연습을 했는데,

거기에서 나온 믿음이었나 봐요. 함께 연습파트너를 해준 남자 선수들에게 고맙죠.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긴장되고 많이 떨렸지만 맏언니라서 내색할 수 없었다고 했다. 스스로는 어떻게 긴장을 풀었는지?

 저도 긴장이 많이 됐는데, 아무래도 나이 어린 선수들에게 하소연하거나 내색할 수는

없었어요. 다른 시합과 똑같다고 자기주문을 하기도 했고요. 소치 숙소가 바다가 바로 보이는 곳이었어요. 평소에도 바다를 좋아해서 마음이 힘들 때 종종 바다를 보러 가곤 했었는데, 숙소 앞이 바다라 바다를 계속 바라보면서 긴장을 풀었어요.

옆방을 쓰던 다른 빙상 종목 선수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긴장을 풀기도 했고요특히 상화(스피드 스케이팅 이상화 선수)는 예전부터 가깝게 지냈고 종목에서 선배 위치라는 점도 비슷해서 힘이 많이 됐어요.

 

 선수들의 수명이 짧고 세대교체가 빠르게 이루어지던 한국 쇼트트랙에서 언제나

한결같은 기량을 유지하며 29살이라는 나이에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조해리 선수의 선수생활은 후배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었다. 이제 후배 선수들은 조해리 선수를 보며 은퇴시기와 최종 목표 등 선수생활을 새롭게 그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전에 없던 길을 혼자서 걷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냈기에 가능한 길이었다.

 

 

 최장기 국가대표 선수가 될 수 있었던 노하우와 기량 유지에 성공했던 노하우는 무엇인지?

 몸 관리를 잘했던 게 비결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여자선수들은 몸무게 관리가 중요해요선수들이 오래 못 타는 이유들 중 하나가 몸무게 관리실패에요. 부상일 때도 마찬가진데부상인 시기에 몸이 불게 되면 다시 살을 빼고 운동을 시작하기까지 오래 걸리고 힘이 들어요.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 첫 번째가 몸무게 관리이고, 몸 관리를 잘해서 오랫동안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어린 선수들과 함께 훈련할 때 체력적으로 힘든 점이 많았을 것 같다. 어떻게 극복했는지?

 사실 회복속도나 여러 가지 면에서 어린 선수들과 똑같은 훈련량을 소화할 수가 없어요. 그런 걸 코치선생님도 아시니까 조금 배려를 해주시죠. 하지만 팀 훈련량은 어느 정도 맞춰야 해요. 저도 그랬지만 어릴 때는 언니들이 쉬면 , 나도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후배들이 그런 느낌 갖지 않게 하면서도 유도리 있게 훈련할 수 있도록 코치선생님들께서 배려를 해주셨고 그래서 체력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선수생명이 짧았던 쇼트트랙에서 오랫동안 탄탄한 실력을 유지하며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는 평을 듣는데 후배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국가대표로 이렇게 오랫동안 했던 분이 없으셨기 때문에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벤쿠버 올림픽 때도 이미 나이가 많다고 했는데 소치올림픽까지는 출전도 장담할 수 없었어요. 29살이란 나이에 올림픽에 나갔던 선배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이게 잘못된 선택은 아닐까?' 생각도 했어요. 너무 무모한 선택은 아닐까. 29살이란 나이에 올림픽에 나가서 아무것도 못 이룰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후배들에게 "언니처럼 오래 타고 싶어요.", "언니를 닮고 싶어요." 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 말들이 제가 이 나이까지 탈 수 있었던 이유들 중 하나에요. 후배들에게 직접 그런 말을 들으니까 힘들어도 조금만 더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팬 분들의 응원도 힘이 됐고요. 이제는 후배들도 제 나이까지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운동을 할 수 있으니까. 최고령 금메달 리스트라는 것이 그래서 더욱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영광이죠.

 

슬럼프를 겪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그 동안 고생했던 것이 가치가 있었던 것 같아요. 실패 없이 성공했더라면 몰랐을 것들을 많이 배웠고 앞으로 사회 생활을 하는 데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저에게 힘든 시기가 많았기 때문에 시합 때 아쉽게 떨어졌거나 자기 기량을 못 펼친 선수들에게 더 마음이 가요. 그 심정을 잘 아니까요. 힘든 일을 겪고 있는 후배들에게는 목표를 세우되, 너무 먼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눈 앞에 있는 목표를 하나씩 이뤄나가 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너무 멀고 큰 미래를 생각하고 가다 보면 중간에 지치게 돼요. 그냥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길이 열려요.

최선을 다하다 보면 또 기회가 오고요.

 힘들어 하는 선수들에겐 항상 자기만의 때가 있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다른 선수들하고 비교하면서 노심초사하기보다는 묵묵히 자기 길을 걷다 보면 곧 자기의 때가 올 거라고. 그걸 기다릴 줄 아는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잦은 부상, 올림픽에서의 좌절, 체력적인 어려움 등 모든 어려움을 그녀는 결국 소치올림픽 금메달의 밑거름으로 만들었다. 담담하게 힘들었던 시기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힘든 시기를 겪은 것이 오히려 좋았다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는 모든 목표를 이루고 인생의 1막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홀가분함만이 남아있을 뿐 그 어떤 아쉬움도 찾을 수 없었다

 

하루 앞의 일도 속단할 수 없기에 한 걸음 한걸음 눈 앞의 일부터 충실하려 한다는 그녀는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도 아직은 학업을 다시 시작할 예정이라는 것 외에는 차근차근 생각하고 준비할 뜻을 보였다.

 

조해리 선수가 걸어온 길이 쉽지 않은 길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많은 쇼트트랙 팬들은 그녀의 마지막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를 열렬히 응원했다. 그 누구보다 간절히 응원했을 부모님. 아픔을 이겨낸 선수와 선수 곁에서 힘을 불어넣은 코치, 그리고 뒤에서 조용히 응원해준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결국 올림픽 금메달을 합작해낸 것은 아닐까.

인터뷰의 마지막. 조해리 선수는 지금의 조해리 선수를 만들어 준 부모님과 모지수 코치에 대한 감사의 인사와 함께 그 동안 응원해준 팬들에게도 마지막 인사와 당부의 말을 전했다.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쇼트트랙에 앞으로도 계속 관심 많이 가져주시고 선수들도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응원이 정말 많이 힘이 되거든요. 동계 올림픽이 끝나면 관심이 식는 건 많이 안타까워요. 꾸준히 관심 가져주시고 응원해주시면 좋겠어요."

 

 

이정표 없이 길을 개척해나가는 것은 얼마나 외롭고 힘이 드는 일인가. 후배들은 이제 조해리 선수가 세워 놓은 이정표를 보며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 평창에서, 그 이후 올림픽에서 한국 쇼트트랙은 점점 그늘을 벗어나갈 것이다. 어떤 미사여구나 화려한 수식어 없이도 그녀가 쇼트트랙의 새 역사가 된 이유다.

 

[아이스뉴스(ICENEWS) 글=안정윤,  편집=정혜리, 이주영, 권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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