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는 마지막까지 돌아간다, 모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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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스케이팅의 500m는 빙판 위에서 가장 빠른 사람을 뽑는 경기로 육상으로 따지면 100m 달리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8여 년 전, 대표팀 막내로 올림픽에 출전하여 세계에서 가장 빨리 스케이트를 타는 선수가 되었던 모태범 선수는 어느 덧 본인의 마지막 올림픽을 준비하는 노장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모터는 씽씽 잘 돌아가고 있다.

모태범 선수

핫도그와 츄러스에 혹해 시작한 빙상
7살 때 어린이대공원에서 어머니가 사주신 핫도그와 츄러스에 현혹되어 스케이트를 시작한 모태범 선수는 8살에 빙상팀이 있는 은석초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시작한다.

당시만 해도 쇼트트랙이 정말 인기가 많았지만, 다치는 게 무서웠던 모태범은 스피드스케이팅을 선택했다. 평소엔 장난도 많이 치고 까불까불했지만 빙판 위에만 서면 누구보다 진지한 모습을 보이며 훈련에 임해 지구력과 순발력을 키웠다. 물론 이 또한 혼나기 싫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렇지만 타고난 승부근성 또한 강해서 함께 운동하던 이상화에게 번번이 지자 화가 나서 놀리고 못되게 굴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가지고 알 수 있는 것은 이상화 선수가 남자 선수들을 이길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지만 모태범 선수의 놀림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여린 성격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연습과 훈련으로 열심히 기량을 연마하던 모태범 선수에게도 사춘기가 다가왔다.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모태범은 자유롭게 뛰어노는 또래 친구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고 어머니에게 대들며 운동을 중단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핫도그와 츄러스로 모태범 선수를 스케이트의 세계로 이끈 모태범 선수의 부모님답게 부모님은 그를 타이르거나 혼내지 않고 그냥 내버려뒀다. 그러자 모태범 선수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운동을 쉬자 몸이 근질근질해진 모태범 선수는 며칠을 못 참고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금 운동을 재개한 모태범은 날로 기량을 향상해 2007년 국가대표에 선발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하늘같은 선배들 사이에서 막내로 운동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학교에서와 다른 훈련방식과 생활패턴에 적응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힘겨운 적응기를 거쳐 주니어세계선수권과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서 연거푸 정상에 올랐지만 성인 무대는 만만치 않아서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어렵사리 밴쿠버 올림픽 출전권을 땄어도 올림픽 개막 전 그를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오기가 발동한 모태범 선수는 더욱 독하게 훈련했고 절친이자 룸메이트였던 이승훈 선수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올림픽에 대한 꿈을 키웠다. 그리고 그 우정을 바탕으로 두 사람 모두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생일날 따낸 대한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첫 올림픽 금메달

밴쿠버 동계올림픽 500m에서 모태범 선수는 2번의 시기에서 모두 2위를 차지하며 합계 69초 82의 기록을 세웠는데, 다행히도 상대 선수들이 기복을 보여 우승할 수 있었다. 때마침 그날은 모태범 선수의 생일로, 가장 큰 생일 선물을 받은 셈이 되었다. 이 금메달은 대한민국이 쇼트트랙 이외의 종목에서 처음 딴 금메달로, 1900년대 초반에 미 선교사들에 의해 이 땅에 스케이팅이 처음 들어온 이래 가장 큰 쾌거라고 할 수 있다. 모태범 선수는 이후 열린 1,000m 경기에서도 미국의 샤니 데이비스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하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나고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한 모태범 선수는 깊은 부진에 빠졌고 세계무대가 아닌 아시안게임에서조차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이때 대한항공에서 스피드스케이팅팀을 창단하면서 모태범 선수와 절친 이승훈 선수를 함께 스카우트했다. 안정적인 직장이 생긴 데다 이승훈 선수, 대한항공의 권순천 코치의 도움도 받은 덕분에 심리적인 평안을 찾은 모태범 선수는 예전의 기량을 회복한다.

그 결과 모태범 선수는 2011-2012 시즌 ISU 월드컵 500m 종합 우승을 차지하고, 2012년 종목별 선수권 대회에서도 500m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최고 스피린터의 입지를 다졌다. 재미있는 것은 이상화 선수도 밴쿠버에서와 마찬가지로 같은 대회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질긴 인연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모태범 선수는 스케이트 날을 바꿨다가 다시 예전 것으로 교체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겨우 실력을 회복하여, 2013년 소치에서 프레올림픽을 겸해 열린 종목별 세계선수권 대회 1,000m에서 2위, 500m는 우승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모태범 선수

아쉬운 소치 올림픽 4위, 그리고 계속되는 부진

그리고 1년 후 열린 대망의 소치 동계올림픽. 개인종목 2연패의 꿈을 안고 도전한 모태범 선수는 빙상 강국 네덜란드의 벽 앞에 좌절하고 말았다. 1, 2, 3위를 나란히 차지한 네덜란드 선수들에 밀려 500m 1차 시기, 2차 시기 모두 4위에 그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후 치러진 1,000m에서도 12위를 기록하며 모태범 선수는 결국 빈손으로 귀국해야만 했다.

소치 올림픽 이후 모태범 선수는 2014-2015 시즌 월드컵에서 은메달 3개를 따며 다시 예전의 기량을 회복한 듯했으나, 이후 계속된 부진 끝에 디비전 B로 떨어지기도 하는 등 슬럼프가 오래갔다. 기록은 전성기에 기록하던 34초대 초반에 한참 못 미치는 35.4~35.6초대에 머무르며 외국 선수들뿐만 아니라 차민규 등의 후배들에게도 뒤처지는 성적이 나와서 이제는 한물 간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2017 삿포로 아시안게임에서도 김민석(평촌고) 선수가 2관왕을 차지한 반면 모태범 선수는 노메달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 시즌 모태범 선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 소치 올림픽 직후 오른팔엔 라틴어로 ‘Acta Non Verba(말 대신 행동으로)’, 왼팔엔 ‘Sustine et abstine(참아라 그리고 절제하라)’라고 문신을 새기며 마음을 다잡은 그는 묵묵히 훈련을 소화하며 마지막이 될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소치 올림픽 때의 실패를 되새기며 절치부심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는 모태범 선수. 주변에서도 모태범 선수의 몸 상태가 최상이라며 소치 올림픽에서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다.

게다가 후배들의 추천으로 대표팀 주장이 되기까지 했다. 이에 즐겁게 훈련하고자 후배들과 대화도 많이 한다는 그는 국제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기량은 비슷하다며 그날 컨디션 상태와 얼마나 경기를 즐기면서 임하는지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고 말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지기 싫어 열심히 연습하고 있으며 작년보다 컨디션은 확실히 좋다고 말했다.

과연 모태범 선수가 8년 만에 다시 세계 정상에 설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번 시즌 모태범 선수의 월드컵 랭킹은 500m 23위, 1,000m 16위로 세계 정상권과는 거리가 멀다. 어쩌면 소치 올림픽 때보다 더 나쁜 결과를 얻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만큼 후회 없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