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13-2014 시즌 쇼트트랙 월드컵 2차 시리즈의 화제는 단연, 빅토르 안이었다. 16살의 나이로 1차 대회 여자부 3관왕에 오른 심석희나 약세 종목이었던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2관왕에 오른 캐나다 찰스 헤믈린이 아니라. 세계선수권 5연패와 올림픽 3관왕의 업적을 뒤로하고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이제는 빅토르 안이라고 불러야 하는 이 불세출의 쇼트트랙 선수 덕분에 실로 오래간만에 쇼트트랙 관련 단어가 포털의 검색어 순위 1, 2위를 다투고 스포츠 인터넷 뉴스 상단을 독차지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그 결과 지난 주말 스포츠 뉴스의 주인공은 11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LG 트윈스나 맨체스터 유나티이트와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 출전한 기성용,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포스트 시즌 선발을 앞두고 있는 류현진이 아닌 빅토르 안이었다.


예상(?)대로 부진했던 남자 대표팀

 

사실 빅토르 안이 러시아로 귀화했을 때부터 오늘의 결과와 파문은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었다. 게다가 포스트 안현수 시대를 이끌던 에이스 곽윤기가 부상 후유증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고, 1,500m의 절대 강자 노진규가 선발전에서의 부진으로 올림픽 개인전 출전이 좌절되면서 우려의 목소리는 커졌다. 하지만 3년 전 짬짜미 파동으로 올림픽 개인전 출전 자격을 선발전 종합 1~3위에게 무조건 주기로 못 박아 버린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선 선발전을 통과한 선수들이 잘하길 기원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결국 2012-2013 세계선수권자로서 자동 국가대표로 선발된 신다운과 선발전 종합 1, 2위를 차지한 이한빈과 박세영이 개인전에 나선 대한민국 남자 국가대표팀은 1차 대회에 이어 안방에서 열린 2차 대회에서조차 개인전 노골드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계주에선 준결승에서 탈락하는 수모마저 겪었다. 1차 대회에 이어 또다시 금메달 3개를 휩쓴 여자 대표팀과 대조되어 더욱 초라한 성적표였다.


너무나 거대한 벽이 된 빅토르 안

 

2013-2014시즌 시작 전부터 빅토르 안과 대한민국 남자대표 선수와의 대결 구도는 표면화됐고, 기자들은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때마다 대표 선수들은 안현수를 존경하지만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똑같은 질문이 던져졌고, 남자 대표팀의 윤재명 코치는 ‘안현수도 그저 한 명의 외국선수 빅토르 안이며 특별히 견제하지는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대회에서 빅토르 안은 그저 한 명의 외국선수가 아니었다.

이번 2차 대회 각 종목의 결승 무대에서 대한민국 남자 대표팀의 선수들은 빅토르 안에게 철저하게 막혔다.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전통적인 중장거리 종목 전략은 중반 이후 우월한 기술과 체력을 바탕으로 추월을 하여 끝까지 유지하거나 막판 날 들이밀기로 대역전극을 거두는 패턴이었다. 알고도 못 막는 이 전략이 20여 년간 대한민국을 쇼트트랙 강국으로 군림케 한 비결이었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이 전략을 가장 잘 이해하고 펼쳐온 에이스가 하루아침에 다른 나라 선수가 되어 나타난다면? 영화나 만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현실화되면서 대한민국 쇼트트랙계는 커다란 후폭풍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2차 대회 개인전 경기들을 복기해보면, 대회 둘째 날 1000m 예선에서 신다운이 빅토르 안과 충돌하면서 실격으로 예선 탈락한 것을 시작으로 대회 셋째 날 1500m 결승에 무려 세 명이나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레이스 중반 이후 2위로 나선 빅토르 안과 찰스 헤믈린의 선두 다툼에 끌려가다 막판에 이한빈이 가까스로 빅토르 안을 제치고 은메달을 따냈다. 이후 벌어진 500m 결승에선 박세영이 초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빅토르 안과 우다징에 이어 3위로 골인했다. 그리고 넷째 날에 벌어진 1000m 결승 역시 박세영은 경험과 기량 부족을 드러내며 빅토르 안에게 막판 추월을 허용하여 3위에 그쳤다. 가장 당혹스러운 결과가 벌어진 종목은 남자 계주. 준결승에서 러시아에 이어 2위로 달리던 대한민국 남자대표팀은 신다운이 블록을 밟으며 넘어지는 바람에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러시아 인이 되어 돌아온  빅토르 안은 대한민국 남자 대표팀의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 된 것이다. 대한민국 선수들의 전략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데다가 기술과 경험은 몇 수 위인 빅토르 안은 대한민국 남자 국가대표팀이 이제껏 상대해 온 그 어떤 상대보다 강한 상대일 것이다.


결국은 에이스 신다운이 해 줘야

 

문제는 다가올 3, 4차 월드컵뿐만 아니라 2014 소치 올림픽에서 홈 어드밴티지를 안을 빅토르 안과 러시아 대표팀은 더욱 더 강해질 것이란 점이다. 결국 대한민국 남자 국가대표팀은 이번 대회 못지않은 매우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그에 따라 빅토르 안을 러시아로 귀화하게 만든 원인에 대한 전 국민적인 책임 추궁과 여론 몰이가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결국 해법은 단 하나, 대한민국 남자 국가대표 선수들의 분발밖에 없다. 이미 선발된 대표선수를 교체할 수도 업는 법,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이 멤버로 승부를 봐야 그 누구보다도 이번 대회 최악의 부진을 보인 신다운의 부활이 필요하다. 누가 뭐래도 지난 시즌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을 차지한 신다운이 가장 경험이 많고, 실력도 뛰어난 에이스다. 지난 1, 2차 대회의 실패를 거울삼아 새롭게 정신 무장하고, 다시금 스케이트 끈을 동여매길 바란다. 

그리고 빅토르 안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선두 다툼을 할 선수들, 찰스 헤믈린이나 중국의 신예 우다징 등까지 함께 제칠 수 있는 전략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번 대회처럼 빅토르 안과 2위 다툼하다 다른 선수 좋은 일 시켜주는 일은 없어야 할 테니.

매우 어려운 싸움이 되겠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은 법. 속은 더할 나위 없이 쓰리지만 따가운 예방 주사를 맞은 셈치고 다가올 3, 4차 월드컵과 동계 올림픽에 슬기롭게 대처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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