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상하이 세계선수권대회가 이번 주 금요일 개막한다.한 시즌을 마무리하며 쇼트트랙의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이며, 바늘구멍보다 들어가기 어렵다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피하고 차기 시즌 대표에 자동 선발되는 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대회이니만큼 선수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대회이다. 세계선수권대회 개막하기에 앞서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인상적인 세계선수권자들을 살펴보자.

 

불멸의 전관왕, 김기훈과 김동성

 

[세계선수권대회 전관왕에 빛나는 김기훈()과 김동성()]

 

현재 한국 쇼트트랙이 최강자로 군림하기까지에는 처음 기틀을 마련했던 1세대 선수들의 크나큰 노고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크게 이바지한  선수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국가대표 감독을 지내기도 했었던 김기훈(46)이다.

 

김기훈의 업적은 대단하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3(시범종목이었던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1,500m 금메달 포함할 시 4)를 비롯하여 현재 쇼트트랙 기술의 표본이 된 호리병 주법과 외다리 주법을 처음 창시하는 등 기록적인 면과 기술적인 면에서 큰 업적을 남긴 위대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 김기훈의 업적을 더 빛나게 한 것은 1992 덴버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종합 우승이다. 이 우승이 더 빛났던 것은 개인 종목 4종목(500m, 1,000m, 1,500m, 3,000m)에서 모두 1위에 오르며 전관왕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는 1976년 세계선수권대회가 처음 시작된 이래,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특히, 예선부터 결승까지 치러진 모든 경기를 1위로 마친 선수는 김기훈이 유일하다. 그래서 당시 외국 언론에서는 덴버의 연인(Darling of Denver)’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김기훈의 뒤를 이어 채지훈(39)이라는 거물급 선수가 나와 남자 쇼트트랙의 계보를 이었다. 그러나 채지훈이 1996년 허리디스크로 부상에 시달리면서 한국 남자 쇼트트랙의 큰 위기를 맞이하였다. 그 위기 상황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선수가 바로 김동성(33)이었다. 김동성은 1997 나가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처음 종합우승에 오르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남자 1,000m에서 막판 발 내밀기로 역전 우승하며 한국 남자 쇼트트랙 황제의 계보를 이었다.

 

김동성의 가장 큰 강점은 능수능란한 인코스 추월과 탁월한 지구력이었지만, 그를 더욱 돋보이게 했던 것은, 바로 정신력이다. 김동성은 고질적인 무릎부상을 격었지만 정신력으로 극복해왔다. 1997년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했음에도, 연습으로 슬픔을  극복하며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한,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는 전 국민을 잠 못 들게 했던 1,500m 실격사건의 아픔을 정신력으로 극복하여 한 달 뒤 열렸던 2002 몬트리올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전관왕에 오르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두 선수 모두 올림픽 이후 치러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실, 올림픽 이후 바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는 준비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대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력의 싸움,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선수는 그 자기와의 싸움을 이겨내며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 사상 유이한 전관왕이란, 전설로 기록되었다.

 

김기훈이 예선부터 결승까지 모든 레이스를 1위로 마치며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면, 김동성은 계주를 포함하여 전 종목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것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김기훈은 계주 경기 금메달을 놓쳤으며, 김동성은 1,000m 준결승에서 2위로 들어오며 전 레이스 1위를 하지는 못했다. 앞으로 어느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 전경기 1위와 계주 경기를 우승하는 전설이 될지 주목해보자

 

 

역대 최다 연패 기록, 안현수와 양양A

 

 

[세계선수권대회 최다 연패에 빛나는 안현수()와 양양A()]

 

국내 팬들이 쇼트트랙을 가장 편안하게 시청했을 때가 언제일까? 안현수(28)가 남자 쇼트트랙을 호령하던 때가 아닌가 싶다. 안현수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세계선수권대회 5연패를 달성했다. 만약 2007-2008시즌 무릎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2008 강릉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안현수의 독재시대는 계속되었을지도 모른다.

 

바깥쪽 직선주로에서 추월하는 절대적인 스피드, 뛰어난 지구력, 마지막까지 기회를 엿보다가 역전하는 1인자다운 면모 등 종합적인 면을 봤을 때 안현수를 능가할 선수는 없다. 두터운 선수층에서 선발된 현 대표선수들이 모두가 세계 1위를 할 만한 실력을 보유하고도 안현수 없으니 불안하지 않느냐는 일부 팬들의 염려를 듣는 것도 안현수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반대로, 국내 팬들이 쇼트트랙을 가장 불편하게 시청했을 때는 양양A(중국)가 여자 쇼트트랙을 독재하던 시절일 것이다. 양양A1997년 전이경(37)과 함께 공동 1위로 세계 선수권 제패를 시작한 이래 2002년까지 6연패를 기록했다. 이는 남녀 통틀어 최다연패의 기록으로 특히 전이경이 은퇴하고 나서는 이렇다 할 경쟁자 없이 혼자 여자 쇼트트랙을 평정해왔다.

당시 중국 선수들은 500m에 필요한 순발력과 스피드는 좋았지만, 지구력이 부족한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양양A는 단거리의 순발력과 장거리에 필요한 지구력을 고루 갖춰 전이경을 주축으로 한 한국 여자 선수들에게 큰 위협이었다.

 

이 선수의 가장 큰 무기는 코너에서 바깥쪽으로 선수들을 제칠 수 있는 능력이다. 폭발적인 바깥쪽 추월 능력을 갖춘 선수로는 진선유(25)가 대표적이었는데, 진선유는 코너에서 탄력을 받아 직선주로에서 제치는 능력이 뛰어났다면, 양양A는 코너에서 제치는 능력이 탁월했다. 현재 선수생활을 하는 선수 중에 코너에서 바깥쪽으로 제치는 기술을 보유한 선수는 없을 정도니 양양 A의 기술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알 수 있다.

 

양양A는 기술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상대 선수들의 심리를 이용한 스케이팅을 하는 재주를 지닌 선수로 유명하다. 레이스 도중 지친 것으로 보이다가도 막판에 힘을 몰아 쓰면서 방심한 선수들을 제치는 심리전도 할 줄 아는 선수였다. 게다가 필요시에는 양양S와 왕춘루 등 다른 동료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으니 쇼트트랙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갖춘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자부의 안현수, 여자부의 양양A5연패, 6연패 기록은 앞으로 깨지기 어려울 전망이다. 현 쇼트트랙 추세도 종목별로 특화된 선수들이 다양한 데다가, 기량도 비슷하여 연속 우승이 힘들 전망이다. 게다가 스케이팅을 잘하는 선수층이 세계적으로 두터워지고 있는 점은 안현수와 양양A의 기록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있게 한다.

 

양양A는 은퇴한 후 IOC 선수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스포츠계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며, 안현수는 러시아로 귀화하여 새로운 선수생활을 계속하여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잔잔하지만 강렬했던, 민룡과 김소희

 

민룡(31)2000 셰필드 세계선수권대회 종합우승자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당시 한국 남자 쇼트트랙 에이스는 김동성이었다. 어쩌면 2000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민룡이 우승했다는 사실보다 김동성이 리자준의 스케이트 날에 허벅지가 찢겨 부상을 당한 일을 더 기억하는 이가 많을지도 모른다.

 

민룡은 2000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동성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첫날 열렸던 1,500m 결승전에선 초반 힘 뺏기 작전으로 나오다가 신경전으로 경기 내내 스피드를 내지 않던 김동성과 리자준(중국) 등 경쟁자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3,000m에서는 홀로 슈퍼파이널에 진출하여 리자준과 에릭 베다드(캐나다) 등을 제치고 우승을 하여 첫 번째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민룡은 김동성의 대를 이을 선수로 성장하리라는 기대를 모았으나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계주 준결승 경기에서 러스티 스미스(미국)의 팔꿈치 가격에 넘어져 팬스에 크게 부딪치는 부상을 입어 안타깝게도 선수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그리고 김소희(37)는 전이경과 함께 여자 쇼트트랙을 이끌었던 1세대이다. 전이경보다 오히려 국제대회 데뷔가 빨라 한국 여자 쇼트트랙에서 최초의 기록을 다수 보유한 김소희는 1992 덴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현 중국 대표팀 코치로 있는 리얀을 제치고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여자 쇼트트랙에서 종합 우승은 최초였다.

 

사실, 1994 릴레함메르 올림픽 1,000m에서 전이경이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여자 쇼트트랙이 전이경의 중심으로 판도가 이어지긴 했지만, 당시 1,000m 강력한 우승후보는 김소희였고 계주 우승 당시에도 마지막 주자는 김소희였다. 그러나 개인전 1,000m 결승전에서 구상했던 작전 운영이 실패하면서 김소희는 금메달을 팀 동료인 전이경에게 내주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만약 이 경기에서 김소희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면 여자 쇼트트랙의 판도가 뒤바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후 김소희는 부상에 신음하다가 원혜경, 김윤미, 안상미 등 후배들에게 태극마크 자리를 내주고 대표팀에 물러나 있다가, 1997 무주·전주 U대회에 나와 1,000m 극적인 발 내밀기 역전 금메달을 목에 걸며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국제무대에서 퇴장하였다. 김소희의 발 내밀기 역전 금메달은 역대 한국 선수들이 펼친 막판 역전 승리 중 가장 극적이었던 발 내밀기 경기로 기억되고 있다.

 

민룡과 김소희 모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나, 김동성과 전이경이라는 크나큰 장벽에 막혀 빛을 보지 못했고, 부상으로 고생하다가 선수생활을 안타깝게 마무리했다. 그래서 이들의 스케이팅은 잔잔했다. 하지만 위기상황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질주했던 그들의 모습은 오래도록 팬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아이스뉴스(ICENEWS) 박해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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