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피겨가 관심을 받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불과 5년 전만해도 피겨는 그야말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다 김연아라는 슈퍼스타가 등장하면서 피겨는 새로이 주목을 받는다. 김연아 선수가 그랑프리 파이널 1위, 세계선수권 1위, 그리고 올림픽 챔피언 자리에 오르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어느덧 ‘김연아 키즈’라고 하는 많은 유망주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여자 선수로, 남자 선수는 아직까지도 많이 부족하다. 그런데 이런 절박한 남자피겨에서, 한국 남자피겨 사상 최초로 ISU 주관대회 메달을 따온 선수가 있다. 바로 이준형 선수이다.

그는 현 국가대표로 이번 시즌 처음으로 국제무대를 밟은 신인이다. 그러나 이 선수는 대담하게 자신만의 스케이팅 실력을 은반 위에서 유감없이 뽐냈다. 또한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안무로 심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는 당당하게 주니어 그랑프리 시상대에 올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10월 13일 빙상장에서 훈련을 마치고 나오는 그를 만났다. 얼굴에 여드름이 많이 나 있는 게 전형적인 중학생의 모습이었다. 인터뷰 도중 같은 국가대표이자 같은 팀인 곽민정선수가 이 선수를 툭툭 치고 가길래, 필자가 “곽민정 선수 원래 저래요?” 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저희는 서로 이렇게 지내요. (웃음)” 이라며 재밌게 답했다. 그것은 그랑프리 동메달리스트가 아닌, 장난기 많고 재밌는 개구쟁이의 모습이었다.

한국 남자 피겨의 새로운 희망을 보여준 이준형. 어렸을 적부터 그는 유달리 피겨 프로그램을 집중해서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피겨 코치이신 어머니께 지도 받은 스케이팅 스킬은 성장의 밑거름이었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끊임없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그는 대회마다 한국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이제 세계에 자신을 알리고 있는 그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다음은 이 선수와의 일문일답이다. 


Q. 주니어 그랑프리 동메달 축하한다. 소감과 함께 원래 목표가 어느 정도였나.
A. 그냥 운이 좋았어요. 열심히 한 보람도 있었고요. 결과가 나와서 좋긴 해요. 하지만 아직까지도 만족스러운 경기는 아니었어요. 1차 대회 때는 경험하고 오는 게 목표였고, 이런 시합을 처음 나가니깐 그런 생각으로 임했어요. 그러다 보니 긴장도 안했고요. 6차 대회 때는 1차를 나갔으니 5등 정도가 목표였어요. 1차 때 사공경원 선생님이 심판으로 가셨는데 의외의 인물이라고 하셨어요. 쇼트 때 3등해서 놀랐다고. 다른 심판 분들도 그러셨대요.

Q. 주니어 그랑프리를 통해서 얻은 것이 있다면?
A. 이제 일단 작년에 비해서 점프 성공률도 좋아지고, 무엇보다 스케이팅에 신경을 많이 써서 표현력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좋아졌어요. 아쉬운 건 스핀이라든지 스텝연기가 아직까지는 좋지 않은 거에요. 

Q. 지난 여름 동안 전지훈련을 다녀온 것으로 안다. 훈련을 통해 부쩍 성장한 것 같은데.
A. 전지훈련 때는 점프도 좀 더 가다듬고 동작도 신경을 많이 썼고, 트리플악셀 점프를 되게 많이 연습했어요. 그리고 체력훈련 할 땐 많이 뛰었죠. (웃음) 다리 근력운동 많이 하고 작년 같은 경우 (스케이트) 탈 때 음악을 많이 맞추지 않았어요. 이번에는 전지훈련 가서 음악에 많이 맞춰서 성공률도 높아졌어요. 그러면서 자신감도 붙었고요.

Q. 사실 팬들 사이에서 준형 선수가 트리플악셀 점프를 완성했다고 한다. 어떤가?
A. 전지훈련을 갔을 땐 악셀을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몇 번 뛰었어요. 회전도 다 채우고 한발로 랜딩을 했었는데, 시합준비로 안하다 보니깐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도 어느 정도는 될 것 같아요.

Q.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을 소개해 준다면.
A. 이번 쇼트 프로그램 음악 이름을 사실 저도 잘 몰라요. 시합 때 바이오그래피에 음악 이름을 써야 하는데 그때까지 몰랐었어요. 음악 찾기 어플로 찾아서 해보니 ‘This is it’이 나왔는데 아니라네요. 나중에 안무가 선생님이 보냈는데 잘 모르겠어요. (웃음) 프로그램 분위기는 지난 시즌보다 좀 더 성숙한 그런 느낌이에요. 프리스케이팅은 세빌리아의 이발사, 미치광이 이발사라고 해요.

Q. 프리스케이팅 음악이 지난 시즌 음악과 완전히 다른 느낌인데
A. 사실 프리스케이팅은 원래 영화 <진주만>의 OST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안무가 선생님께서 아직 제 나이에 할 음악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바꿨어요. 여러 음악을 안무가 선생님께서 들려주셨는데 이 음악이 제일 좋아서 결정했습니다.

Q. 안무 연습을 어떻게 하나? 특히 프리에서 손동작 안무가 많은데.
A. 안무연습을 따로 한 건 아니고요. 제 필대로 한 건데… (웃음) 처음에 안무를 많이 지적받았어요. 제대로 못했어요. (프로그램) 짤 당시엔 못했어요. 지금도 그때 비디오를 보면 너무 못하는 거에요. 그러면서 좀 더 노력도 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 잘하게 된 거 같아요. 또 제 성격이 그런 성격(장난도 많이 치고 개구쟁이 스타일)이라 오히려 저한테 (밝은 음악이 표현하기가) 더 좋은 것 같아요. 사실 기분 따라 그런 걸(춤추는 것을) 혼자 하길 좋아해서 기분 좋으면 혼자 하고 막 그러죠. 그런 걸 보면 미친 것 같아요.(웃음)

Q. 어머니께서 어렸을 적에 스케이팅 스킬을 많이 강조하셨다 들었다. 도움이 많이 됐나?
A. (스케이팅 스킬 훈련을) 되게 많이 했었어요. 점프보다 우선은 스케이팅이어서 점프보다도 스케이팅을 더 많이 했어요. 계속 꾸준히 하다 보니 잘된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되게 좋은 일이죠. 어머니께서 많이 엄하시기도 했고요. 제가 크면서 말도 안 듣고 했거든요. 사춘기도 오고 그러면서 (웃음)… 또 열심히 해서 PCS(예술점수)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고요.

Q. 프리 의상이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 때와 바뀌었더라.
A. 실제로 옷을 맞춰서 온 건데 너무 이상하더라고요. 색깔이 누렇고 그래서 마치 커텐(!!) 같더라고요. (웃음) 바꾼 게 나은 것 같아요. 적어도 커텐보단?

Q. 모니터링을 자주 하나. 보면서 어머니께서도 지금도 많이 가르쳐 주실 듯한데.
A. 경기 때마다 보는데 주로 보는 부분은 점프보다는 아무래도 동작 같은 거죠. 어머니께선 지금은 기술보다는 표현력, 동작 그런 걸 많이 신경 써 주세요. 제가 타는 동영상을 많이 보시니깐.

Q. 남자 선수들이 점차 늘면서 서로 자극도 될 것 같다.
A. 경쟁도 많이 되고 무엇보다 좋죠. 옛날에는 기껏해야 많아야 세 명이었는데, 점점 늘어나니깐 기분도 좋고, ‘남자 선수들이 점점 생기는구나’ 라고 느껴요. 친구이기도 해서 편해요. 경쟁도 경쟁이지만.

Q. 주니어 세계선수권에 출전하게 됐다. 목표가 있다면?
A. 원래 이번 점수 목표가 180점이었어요. 그래서 조금 아쉬운데, 일단 목표 점수는 총점 180점으로 잡고, 프리 때 아주 깨끗하게 하진 못해요. 클린 프로그램을 목표로!

Q. 내년에도 주니어 그랑프리에 나간다면 어떤 성적을 내고 싶나?
A. 그땐 시니어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해야 하나, 제가 배우고 싶은 선수가 한얀(중국)이어서 그 선수처럼 크게 타고 싶다고나 해야 할까. 그래요.

이준형의 이번 선전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다져왔던 기본 스케이팅이 드디어 국제무대에서 빛을 낸 것이었다. 이준형의 이번 화려한 데뷔는 이 선수 개인 뿐만 아니라, 한국 남자 피겨가 한 걸음 더 내딛는 역사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성장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그가 내년 3월 열리는 주니어 세계선수권 무대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이 모아진다. 


[아이스뉴스(ICENEWS) 글=박영진 기자, 사진=문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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